SUNMIN LEE

가정이라는 풍경

이영준 (계원예대 교수, 이미지 비평가)

가족은 많이 사진 찍히지만 가정은 별로 많이 사진 찍히지 않는다. 가족은 화합과 화목을 표상 하는 이미지로서 많이 보여지고 화합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지만 가정, 특히 가사노동의 공간으로서의 가정은 별로 이미지화되지 않는다. 가정은 흔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듯이 10여명의 가까운 대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식사를 같이 한다든지 차를 같이 마신다든지 하는, 먼 과거에나 있을 법한 이미지로나 비친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풍성하고 활기찬 모습의 이면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어머니, 아내의 끊임없는 노동이 있으며, 그것 없이는 한 순간도 가정은 존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문화적으로 표상 되지 않을 뿐이다.

이선민의 사진은 바로 그런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은 그의 사진에 나오는 모습들은 우리가 집에서 매일 볼 수 있는 것이고, 하등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집에서 엄마가 애들 보고, 방 치우고 하는 모습이야 가장 흔한 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사노동은 가장 이미지화되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 있어 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선민의 사진이 단순히 가사노동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사진에는 시각적 환경으로서의 가정이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그녀는 의미 없는 공간인 가정을 의미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권태로운 디테일들, 즉 붓글씨 액자(살아 있는 전통미), 결혼사진(영원한 사랑), 자개장(품위와 세련미) 등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고, 반대로 의미 있지만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디테일 들, 즉 (후줄근한)아내, (귀찮고 힘빼는)아이들, (걸리적 거리는) 장난감과 기저귀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사진에서 가정의 의미는 반전되고 있고, 그녀의 사진이 낯설어 보이므로 그녀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누구도 한번도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는 가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의 관람객은 그 가정에서 사는 바로 그 사람들이어야 한다. 가족들은 자신이 어떻게 생긴 집에서 살고 있고, 자신의 실내공간이 어떻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풍경같이 생겼는지 낯선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집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사진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아주 획일적인 가정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아파트의 거실 한가운데나 매달려 있는 샨들리에 (우리가 언제부터 보헤미안의 취미에 그렇게 심취했다고), 똑같은 현관문 똑같은 텔레비전 놓는 위치(남과 다르면 죽인다는 법도 없는데)는 우리들을 편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낯선 눈으로 보면 화성인들이 사는 공간처럼 이상해 보인다. 우리들은 그 획일적이면서도 정신없는 모습을 한번 봐야 한다. 가사노동의 힘든 모습 뿐만 아니라 그 권태까지도 같이 봐야 한다.